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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면 끝이다… 기후위기 속 ‘생물 피난처’ 풍혈지 보전 비상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한반도의 북방계 및 냉량성 식물 서식지가 눈에 띄게 파괴·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저지대에서도 얼음골과 같은 천연 냉명 환경을 만들어내며 이들 희귀 식물의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는 특수 지형 ‘풍혈지(風穴地)’의 생태학적 보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임영석)은 ‘세계 생물다양성의 날(5월 22일)’을 맞아, 우리나라 주요 풍혈지가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특산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고립되어 생존하는 핵심 생태 공간임을 대외에 알리고 이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풍혈지는 커다란 바위더미가 가파르게 쌓인 사면(너덜덜함) 등에서 주로 형성되는 독특한 지형이다. 겨울철 바위 틈새로 들어간 차가운 공기가 내부의 암석층을 통과하며 여름철까지 차갑게 유지되다가 바깥으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주변보다 기온이 현저히 낮은 ‘미기후(微氣候) 환경’을 형성한다. 이 덕분에 원래대로라면 고산지대나 냉대기후에서만 자라야 할 북방계·냉량성 식물들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의 저지대에서도 기적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미세 서식처를 얻게 된다.
국립수목원이 전국 주요 풍혈지 25개소를 대상으로 다년간 정밀 식생 조사를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구역에서 총 1,203분류군의 관속식물(줄기와 뿌리에 관다발이 발달한 식물)이 확인됐다. 이 중에는 백작약, 복주머니란 등 멸종위기 위험이 큰 희귀식물 82분류군을 비롯해 병꽃나무, 할미밀망 등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 61분류군, 개감수, 야광나무, 돌단풍, 주저리고사리 등 한반도 북방계 식물 212분류군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한반도 전체 관속식물(3,975분류군)의 무려 30.3%에 달하는 수치로, 좁은 면적의 풍혈지가 국가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얼마나 중차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정량적으로 입증한 지표다.
특히 조사 결과 일부 초희귀·특산식물의 경우 전국에서 단 1~2곳의 특정 풍혈지에서만 극소수 개체군으로 잔존하고 있는 분포의 제한성이 확인됐다. 이는 탐방객의 무분별한 답사나 등산로 개설 등 미미한 환경 변화나 인위적인 훼손 행위가 발생할 경우, 해당 종이 국지적으로 완전히 소멸(멸종)하는 치명적인 결과로 직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학계는 풍혈지를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위기 속에서 생물종의 장기 생존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 즉 ‘기후 피난처(Climate Refugia)’로서 그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지구적 기온 상승과 더불어 불법 채취, 탐방객 유입에 따른 숲길 답압(밟힘), 주변 개발 압력, 서식지 주변의 덩굴류 및 외래식물 확산 등으로 인해 풍혈지의 고유 미기후와 토양 환경이 변질되고 있어 지속 가능한 모니터링과 법적 보전 장치 마련이 긴요한 상황이다.
신현탁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보전연구과 과장은 “풍혈지는 기후위기 시대에 생물다양성을 지탱하는 천연의 유전자 보관소이자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이라며 “생태적 보전 가치가 높은 주요 풍혈지들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등 제도적 울타리를 강화하는 한편, 풍혈지 특유의 미기후 매커니즘을 밝히는 과학적 연구를 지속해 우리의 소중한 천연 자산이 미래 세대까지 안전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겠다”라고 말했다.
